아무 글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


옛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막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백석의 시 <흰 밤>이다.

몇 해 전 아흔다섯에 돌아가신 우리 고모할머니도 수절과부였다.

일찍이 남편이 죽고 고모 할머니는 평생을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았다.

원래 우리 고모할머니가 그렇게 성정이 냉찬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호랑이할머니라고 부를 만큼 할머니는 무서운 할머니로 살았다.

평생을 혼자 살기로 작정하고부터 할머니의 성격이 그렇게 변해버렸다고 했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게, 누구도 할머니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하느라

할머니는 무던히도 고독하셨으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한 밤 보쌈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제 본모습을 숨기며 무서운 고독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아니면 일부러 보쌈이 용이하도록 밤에 잘 때 방문을 열어놓고 자느냐,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 밤, 달빛 하얀 밤을 틈타 목을 매는,

그러한 사태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관습 때문이든, 가난 때문이든,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회 때문이든

성과 사랑으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임에는 틀림없다.


 

오늘 밤에도 하늘의 별처럼 밤하늘을 수놓는 불빛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 십자가가 밤하늘을 수놓는 또 하나의 별인 줄 알았는데

이즈음에는

소위 말하는 그 여관들에서의 '러브'를 하라고 손짓하는 듯한 불빛도 만만치 않다.

이제 그런 '사랑여관'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사람들도 사랑을 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사랑이야 원없이 하고도 남을 터이고,

사람들이 원없이 사랑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이어야 할 터인데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사랑도 자기들끼리 하고 불륜도 자기들끼리만 하는 세상이라서 그런가.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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