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처음에 나는 그의 침묵에 신뢰감을 가지고 동조했다.
그것은 쉬운 일 같았다. 더 이상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더 이상 할 말을 찾아내려 애쓰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침묵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쥘라에트의 침묵이 전설 목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고요한 세계였다면,
의사의 침묵은 처음부터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빈약한 물질만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4시 정각,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뚱뚱한 이들이 낙천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 근거를 찾아 기억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뚱뚱한 이들이 낙천적이라는 평판에는 근거가 없는 듯했다.
대부분의 뚱뚱한 이들이 오히려 베르나르댕 씨처럼 짓눌린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날 오후 4시,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그게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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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행동을 한 번만 하고 말진 않아.
어떤 사람이 어느 날 한 행동은 그 사람의 본질에서 나온거야.
인간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살아가지. 자살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야.
살인자들은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연인들은 다시 사랑에 빠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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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재지 못했다.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 어와 라틴 어를 가르쳐 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